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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가장 사악한 것이다 > 죽음에 이르지 않는 고통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니체 inte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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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스키타이·페르시아인 풍습

머리가죽을 승리의 전리품으로 삼던 일은 이미 고대에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말에 따르면 옛날에 스키타이인들이 적의 머리가죽을 벗겼다고 한다. 그리고 몇몇 서부 시베리아 민족들과 고대 페르시아인들에게도 그런 풍습이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에게서는 머리가죽 벗기기가 오히려 널리 퍼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 역사가들은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디언들이 그런 짓을 할 줄 몰랐다고 보고 있다. 서부 개척시대에 적의 머리가죽을 벗긴 사람들은 홍인종이 아니라 주로 백인종이었기 때문이다(인디언을 죽이면 상금을 타는데 그 증거물로 머리가죽이 필요했다). 그리고 카를 마이의 ‘비네토우’에 나오는 샘 호킨스 같은 인물은 머리가죽을 잃고도 견뎌내 살아남았다.

2. ’라이트’는 저칼로리 식품이다?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식품에 흔히 ‘라이트’라는 말을 붙이는데 그렇다고 자동적으로 그 식품이 칼로리가 아주 낮다는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독일 법률에 따르면 ‘라이트’ 식품,다시 말하면 ‘칼로리를 줄인’ 식품은 g 또는 ㎏ 단위로 봤을 때 칼로리가 ‘정상적인’ 제품의 60% 정도 된다는 뜻이다. 즉 절대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상대적 개념이다. 상대적이 아니라 원래 칼로리가 적은 식품을 ‘저칼로리’ 식품이라 한다. 저칼로리 식품은 칼로리를 줄인 식품과는 달리 원래부터 100g당 최대 50㎉가 들어 있는 식품을 말한다. 천연적으로 칼로리가 적은 대부분의 샐러드 주스 채소처럼 ‘라이트’라고 하지 않는 식품도 있다.


3. 흑인노예 주인은 대부분 유럽인?

인류 역사상 노예를 가장 많이 거래하고 소유한 이들은 아랍인이었다. 아랍인이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삼은 것은 유럽보다 일찍 시작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랍에서 노예로 희생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랍인의 노예 거래는 7세기에 시작돼 19세기에 끝났다. 유럽인의 노예 사냥은 그보다 훨씬 뒤에 시작됐고 더 일찍 끝났으며 훨씬 적은 수의 아프리카인을 잡아들였다. 그럼에도 오늘날 유럽인이 노예 부리는 사람의 전형이 되고 있는 것은 유럽인이 노예를 잘 보살피면서 다뤘기 때문이다. 그들은 흑인 노예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비교적 잘 대우하며 부렸던 것에 비해 아랍 국가의 노예는 대부분 자식도 없이 일찍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랍에는 오늘날 흑인 노예 후손을 찾아보기 힘들다.

4. 사리사욕과 공익은 화합할 수 없다?

사리사욕과 공익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리사욕은 복지와 경제성장을 보장해준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견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리사욕, 즉 우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적당히 제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장경제에서 그와 같은 제어는 무엇보다 경제활동의 참여자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이윤을 확대시킴으로써 이뤄진다. 가령 택시운전사가 새벽까지 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은 막차를 타고온 여행객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간수당을 받기 위해서다. 모든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와 같이 무조건적으로 베풀 때만 기능을 발휘하는 사회는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5. 미 메디케어 시스템은 공정하다?

65세 이상의 모든 미국시민에게 ‘무상’으로 의료혜택을 준다고 하는 미국의 메디케어시스템(노인의료보험제도)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 제도는 무상혜택이 아니므로 모든 사람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얼핏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부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부자들은 더 오래 살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메디케어 비용을 청구해 미국에서 상위 10%에 드는 부자들의 경우 이 제도로 그들이 평생 세금을 내는 액수보다 1,000달러씩 더 이익을 보고 있다.

6. 특히 독일인이 외국인을 적대시한다?

독일은 예로부터 이방인들에게 인기 있는 나라였으며 수세기에 걸쳐 이방인들은 유럽의 그 어느 곳보다 독일에서 환대를 받았다. 특히 프로이센은 외부인에게 가장 개방적인 국가들 중 하나였으며 “전 유럽에서 박해받는 자들, 모욕과 굴욕을 당하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이자 구호소”(하프너)였다. 발도파 신도와 재세례파 교인,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신도, 유대인, 그리고 때로는 가톨릭 신자들까지 무리를 지어 독일로 몰려들어왔고 또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700년 무렵만 하더라도 베를린 시민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프랑스인이었다. 현재 독일에는 700만명 이상의 외국인들(난민과 망명 희망자는 제외)이 살고 있으며 난민과 망명 희망자들을 도와주는 일에서 독일은 전세계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 생략 -

...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상식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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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차 사이로 ‘림보’를 하는 아침, 아노미를 넘어 코마 상태에 이른 매너 없는 주차 전쟁…주차란 ‘어디에 대느냐’가 아닌 배려의 기술, 주차와 차 구입 연계한 캠페인은 어떤가

▣ 노진수 <자동차생활> 기자

거쳐야 할 무언가를 누락한 사회는 그 후유증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법. 모더니즘을 건너뛴 채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고, 존재(being)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누락한 채 웰빙(well being)을 부르짖는 대한민국은 사춘기를 건너뛴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처럼 끊임없이 삐걱댄다. 우리 사회는 자동차를 사서 굴릴 줄만 알았지 차를 모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역시 성급하게 패스해버렸다. 그런 문제가 집약돼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주차 문제다. 차를 예의 바르게 다루는 법에 대한 사회적 고민 없이 차를 사서 굴리기에 바빴기에 우리의 주차장은 어느덧 전쟁터가 되었다.

두 칸에 걸쳐 넣기, 보닛 열고 들여다보기…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아파트 주차장에 나오니 내 차 앞에 이중 주차된 차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덜 풀린 몸으로 차를 밀어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운전석을 들여다보니 사이드 브레이크가 당당히 채워져 있다. 차를 빼달라고 전화하려 해도 메모가 눈에 띄지 않아 결국 분통을 터트리며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역으로 뛰어간다. 메모가 붙어 있어 전화를 하면 연락을 받고 나온 차주가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 없이, 가끔은 적반하장 격으로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있어 차는 밀리는데 핸들이 똑바로 되어 있지 않아 차가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건 또 어떤가. 자신이 운전석에서 내리기만 하면 다인지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바짝 대놓아 때 아닌 ‘림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이중 주차된 차를 힘겹게 떠밀다 보니 가공할 수준의 근력을 보유하게 된 여성 운전자도 무게 2t이 넘는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차를 가로막은 날이면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한갓’ 주차 때문에 정신적 공황의 참맛인 ‘아노미’ 상태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새 차를 뽑아 고이고이 주차장에 세워놨더니 차 옆구리를 도어로 찍는 이른바 ‘문빵’(혹은 문콕) 테러를 당했을 땐 아노미 저 너머에 있다는 ‘코마’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간혹 고급차나 수입차 오너 중엔 옆차의 문빵 테러를 막기 위해 주차 라인 한가운데에 차를 세워 두 대분의 공간을 차지하는 전설의 ‘철판면상술’까지 등장한다. 우리의 아파트와 공공주차장은 그야말로 후안무치의 전설적 영웅에 인면수심의 악당이 출몰하는 강호에 빗댈 만하다.

주차 전쟁에서 주택가 이면도로도 빼놓을 수 없다. 주차 실력은 물론 ‘거주자 방문 차량’ 등 한 줌의 권력이 동원되는 총력전이 펼쳐진다. 고육지책으로 ‘차고 앞 주차금지’ ‘대문 앞 주차금지’ 등을 붙여놓거나 주황색 주차금지 표지만을 세워놓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 뱅뱅 돌던 운전자라면 슬쩍 표지판을 옆으로 밀고 실례를 하고 만다.


시내 도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불법 주차된 차들로 교통 흐름이 상습적으로 마비된다. 잠깐 주차하는 차량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차량 때문에 도로 한가운데서 ‘급주차’ 모드로 바꿔 뒤를 따르던 차량은 ‘급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변경한다.

그러니 한 도넛 업체의 TV광고가 보여주는 ‘주차 비법’은 웃기기보다 슬프다. 차 보닛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던 남자는 여자가 커피와 베이글을 사오자 재빨리 보닛을 닫고 차 안으로 냉큼 올라탄다. 바쁜 출근길에 주차가 난감한 상황에서 짜낸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숭고한 의식 같은 사이드미러 접기

주차할 곳은 마땅찮은데 불법 주차에는 대가가 기다린다. 공권력은 불법 주차 스티커와 견인 신공으로 맞서는 것이다. 가끔은 대문짝만한 불법 주차 스티커를 보조석 앞이 아니라 운전석 앞유리에 붙여놓는 초강수를 두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견인차보관사업소에는 차를 강탈당한 운전자들의 한 맺힌 절규가 메아리친다. 관청의 민원실과 교통지도과, 일간지의 독자투고란에는 주차 예절을 호소하는 투서 아닌 투서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주차 시비 끝에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9월엔 대구에서 주차공간의 주인이 화물차 운전자와 주차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고,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는 주차 문제로 둔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일도 빚어졌다. 2004년에는 경비원이 주차 시비 끝에 입주민을 살해한 뒤 자살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화가 치솟을 때 차주인이 곁에 없는 것이 다행이다. 그럴 경우에는 애먼 차로 분노가 향한다. 차바퀴에 구멍을 내거나 날카로운 것으로 지익 긁어버리는 일은 다반사다.

이 땅의 영특하신 선각자들이 일찌감치 한민족에게서 ‘총기 소지의 자유’를 박탈한 것은 신의 축복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택가 이면도로와 오래된 아파트의 주차장은 화약 냄새 그윽한 전쟁터가 되었을 터. 대문 앞 혹은 차고 앞을 노리는 이웃들로부터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의 무사 주차를 위해 어머니는 밤마다 매그넘탄을 스미스웨슨 권총에 장전하고 계셨을 게다. 이쯤 되면 주차 때문에 ‘내전’을 겪는 최초의 국가가 되었을지도….

이토록 처절한 주차 환경에서 ‘전동 접이식 사이드미러’는 실질적인 효과보다 심리적인 안도감이 더 큰 대표적인 장비다. 주차를 마친 뒤 맨 마지막에 사이드미러를 접는 모습은 떠나 있는 동안 자동차의 무사안영을 비는 숭고한 종교의식으로 비쳐질 정도니까.

사실 주차 문제의 본질은 ‘차를 어디다 세우느냐’가 아닌 이웃 혹은 타인을 얼마나 배려하느냐다. 불법 주차를 하더라도 타인을 배려한 것인지 아닌지는 차 세워진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다. 주차 뒤 오너는 물론 양심까지 철수해버린 광경은 명랑한 도시 생활을 서글프게 한다.

다른 운전자들을 동료나 친구가 아니라 ‘적’ 내지 ‘경쟁자’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들을 ‘운전 동료’로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 내가 큰 사고를 겪을 때 구급차와 경찰차를 불러줄 사람은 바로 내 주위의 다른 운전자들이다.


차를 샀을 때도 얼마나 잘 나가나 고속도로에서 달려보기 전에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운전석에 앉아 차체의 크기를 가늠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친구나 동료에게 부탁해 차 뒤쪽 50cm 정도에 서 있으라고 한 뒤 사이드미러로 친구와 차의 거리감을 반복적으로 익히는 것.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차 앞부분도 이같은 방식으로 눈에 익혀두면 좁은 공간에서 차를 다룰 때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운전자의 ‘예의’임과 동시에 주차를 하건 운전을 하건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한 양식 있는 운전자로서의 첫걸음이다.

운전면허학원에서 매너 교육을

요즘 공공주차장에는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이 일정 비율로 마련돼 있다. 장애인을 위해 비워두어야 할 이곳을 급한 마음에 비장애인이 차지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 장애인 스티커만 붙인 비장애인 역시 사용을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세우더라도 다른 차와 보행자들의 이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고, 주차하다 옆차에 상처를 냈다면 차주에게 연락하든지 메모를 남겨두는 건 기본이다.

무엇보다 차를 몰고 어딘가로 나설 때 운행 코스만 따지지 말고 도착 뒤 어떻게 주차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까지 세우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나의 불편을 따지기 전에 남의 불편을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의 주차 문화는 한결 아름다워질 것이다.

정책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한반도 1.7배 면적에 1억3천 명이 오글오글 모여사는 이웃나라 일본의 주차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차 구입과 주차를 법률적으로 연계한다. 차를 살 때 주차 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 안방이든 주방이든 헐어서라도 주차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차를 살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소리다. 이제 우리 정부 또한 차를 사기 전 소비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로 유지비나 찻값뿐 아니라 주차 공간까지 염두에 두도록 캠페인을 벌어야 할 것이다.

좁은 주차 공간을 더욱 좁게 만드는 대형차 선호도 정책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유럽 시장 전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90%가 C세그먼트(유럽과 미국의 차체 크기로 차급을 나눈 기준) 이하 소형차였다. 현대 쏘나타와 그랜저가 판매 1, 2위를 달리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지난 한 해에 팔린 국산차 가운데 경차는 4.2%(약 3만9천 대), 소형차는 23.9%(약 22만4천 대), 중형차는 27.6%(약 25만8천 대), 대형차는 15.8%(약 14만8천 대)였다. 여기에 덩치 큰 SUV와 기아 카니발 같은 미니밴까지 더해지면 전체 판매 대수의 절반 이상이 중형차 이상급이 된다.

물론 학교에서 배운 ‘도덕’ 교과서대로 사회가 굴러가는 것이 아니지만 운전면허를 배우는 학원에서 면허시험에 합격하는 기술만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 운전 매너, 배려의 기술도 가르치면 어떨까. “다음 중 항의를 듣기 꼭 좋은 주차 상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주차 방법으로 옳은 것은?” “잠깐 주차할 때 남기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는 것은?”….


  • TIP운전자라면 누구나 불법 주차 스티커가 붙었을 때 잘 떨어지지 않아 고생깨나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같은 스티커가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만약 붙었을 때는 스프레이 타입의 스티커 리무버를 이용하면 쉽게 뗄 수 있으니 차에 하나씩 비치해두는 게 좋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살충제는 거의 효과가 없으니 주의하자. 리무버가 없다면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을 스티커 위에 덮어 어느 정도 불리면 깨끗하게 잘 떨어진다.

    기사본문 : http://www.hani.co.kr/section-021108000/2007/03/021108000200703150651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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